축구 한일전 vs 4.11총선
민주통합당 공천이 마무리된 지난 3월 중순 이후, 나에게 있어서 4.11 총선은 한국과 일본의 축구 국가대표 대항전 비슷한 것이 되었다. 그것도 아주 dirty play가 난무하는 한일전이었다. 이기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지면 세상의 종말의 오는 것 같지만, 실은 이기건 지건 세상도, 나의 삶도 변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권율 46%와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 또한 dirty play로 인해 결과에 흔쾌히 승복도 않고, fair play를 기대하는 팬들은 아예 경기 자체에 환멸을 느끼기 때문이다.
4.11총선의 의미를 그 정도로 낮게 보는 사람이 왜 본업인
(연구)소 키우는 일을 접고, 오래 살지도 않은 관악구갑에 무리하게 출마 했냐고? 바로 정치가 축구 한일전처럼 분노와 증오의 발산 통로는 되지만, 실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현실을 혁파하고자 출마했다면 답이 되겠는가? 아무튼 올 1월19일 발표한 내 출마의 변은 이랬다.
http://www.socialdesign.kr/news/articleView.html?idxno=6574
야권연대가 총선에서 이겨야 MB비리도 들춰내고, 보수언론과 재벌도 혼내주고, 부자증세를 통해 보편적 복지도 하고, 나아가 대선에서 승리하여 이른바 2013년 체제를 건설 할 수 있다고 믿어의심치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는 큰 착각이거나 사기라고 생각해 왔다. 현재의 선거제도, 국회시스템, 정치문화, 정치지형과 정치 리더십의 저열한 안목(비전, 정책)으로는 이정희, 노회찬 등 몇 명의 TV정치스타가 탄생하고, 욕설・고성만 요란할 뿐, 임박한 국가적 위기 탈출을 위한 의미있는 전진을 할래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친보수 무소속 당선자를 합치면 200석이 넘었다. 당시 통합민주당은 81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3석에 불과했다. 정당득표율도 보수계 65 vs 진보계 35 정도였다. 그 몇 개월 전 대선에서 MB는 사상유례가 없는 압승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원하는 법안을 맘대로 처리하지 못하였다. 이재오 등은 간절히 원했지만 결국 헌법개정도 하지 못하였다. 국회 2/3의 동의도 간단치 않았지만, 국민투표에서 과반을 넘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한국 국회는 다수결주의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체로 여야 합의주의다. 이유가 있다. 전통적으로 칼자루를 쥔 다수파의 횡포(대량 학살) 혹은 좋은 말로 하면 공화주의적 전통의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민주통합당의 공천과정에서 똑똑히 보여주었듯이.......어쨌든 국회는 법사위원장 등 16개 상임위원장을 교섭단체가 대충 의석 비율로 나눠가진다. 법안의 검문소이자 상원 비슷한 법사위원장은 전통적으로 야당 몫이다. 여론은 소수파 야당의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장 점거 농성(육탄저지)에 대해 관대하다. 게다가 주요 사안은 당론 투표를 하기에 의원 개개인이 자유투표를 하기 곤란하다. 1년에 두 번 있는 재보궐선거와 2년 뒤의 지방선거는 대체로 여당의 실정이나 날치기 폭거에 대한 심판의 장이다. 이렇듯 대통령과 다수당의 일방주의에 대한 삼중 사중 오중의 견제 장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07~8년 대선과 총선을 통해서 1987년 이후 최강의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장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있는 법,제도적 개혁을 못한 것은 시민사회와 야당의 결사저지(촛불시위와 본회의장 점거) 때문만은 아니다. 4대강에 엄청난 정치적 자원을 쏟아 부은데서 보듯이 MB, 박근혜, 이재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보수 지식사회 공히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문제 해결의 중심고리(킹핀)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교착체제를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달라진 것은?
4.11총선 이후 정치적 교착 체제를 구성하는 조건들 중에서 변한 것은 없다. 아니 좀 더 악화 되었다. 첫째, 의석수도, 정당득표율도 엇비슷해졌다. 그야말로 교착상태가 된 것이다. 둘째, 정치집단의 안목과 마인드와 문화도 나아진 것이 없다. 셋째, 진보의 주된 에너지는 분노, 증오의 표심이고, 보수의 주된 에너지는 혐오, 불안의 표심이다. 이번 총선에서는 이 둘이 첨예하게 부딪히면서, 비전정책 경쟁을 자극할 무소속과 이념적, 지역적 중간지대가 사실상 몰락하였다. 정치적 독과점과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소선거구제 상대다수득표제와 약한비례대표제는 그대로 인데, 충청 지역주의 및 맹주만 약화되다 보니 양대 정당(새누리당과 야권연대)의 독과점(분할)이 극에 달해 버린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의석수가 지역구 7석, 비례 6석으로 사상 최고라지만 야권연대(민주통합당의 양보) 없이는 독자로 지역구 의원을 당선시킬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제3당의 존재 기반은 더 약화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어쨌든 모든 독과점 구조에서는 품질 개선이 안되는 법이다. 아무리 공천을 엉망으로 해도, 정책적 행보를 개판으로 해도 MB와 새누리당이 싫으면 울며겨자 먹기로 야권연대를 찍는 상황이라면 숙성된 비전정책과 국가경영 실력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이는 새누리당에도 해당된다.
양당 구도야 영국, 미국 등 소선거구제 상대다수득표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공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정치 품질을 유지하는 것은 그 나라에서는 다수결주의, 공화주의, 상원, 언론, 사법부(대법원), 사회적 권위(직업윤리) 등이 그런대로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선출직과 정무직이 많기도 하거니와 공천 과정에서 원칙(시스템), 상식, 예측 가능성이 있어서 정치품질 향상 경쟁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특히 공천 과정은 원칙도, 시스템도, 예측가능성도 없고, (민주통합당의 경우) 오직 기득권 편향의 나눠먹기다. 올 1~2월까지는 그래도 정치적 기득권자의 숫자라도 적었고, 또 비기득권자들을 ‘공정한 공심위’와 ‘국민참여경선’ 이라는 사기라도 쳐서 당에 끌어모을 수 있었으나, 원칙과 상식의 학살극을 경험한 이상 이제는 사기도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한국의 양당제는 비전정책, 실력, 매력 혁신경쟁이 일어나기 힘들며, 비민주성이 뿌리깊은 양당의 적대적 상호의존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무력이 아닌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나라 중에서 한국처럼 최악의 정치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가 또 있는지 의문이다.
진보가 압승하면 2013년 체제가 되나?
내가 하는 한 ‘2013년 체제’는 2013년 이후 도래할 남북관계의 대전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진보의 보수에 대한 압도적인 힘의 우위(행정권력과 의회권력 장악)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80석 짜리가 170석 짜리의 행보를 거의 저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공격과 수비가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2004~5년에 보았듯이 보수도 얼마든지 결사항전 할 수있다. 그런데 진보의 힘만으로는 2013년 체제를 못 만든다고 하는 것은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강령에 집약된 정책 노선과 엉망진창인 당내 민주주의, 양아치 마인드, 저열한 국가경영 실력이 양극화, 일자리, 억울함, 불안함, 고단함, 불신 등 핵심 고질병을 절대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의 노선, 마인드, 실력의 한계는 지난 5년간 증명되었다.
2013년체제는 보수의 자부심인 1953년, 1961년 체제(철학, 가치, 제도, 문화)의 짙은 그늘에 대한 보수의 성찰과 진보의 자부심인 1987년 체제와 민주정부 10년의 짙은 그늘에 대한 진보의 성찰을 바탕으로, 임박한 국가적, 민족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진보와 보수의 대타협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저지, 반대, 폐기, 강제 할당, 척결’ 등 방어적 마인드가 아니라, 사회역사적 통찰력과 정치적 상상력(담대한 비전)과 강단을 지주로 한 건설적 마인드로 만드는 것이다.
이 관건은 5~6개의 유력 정당이 비전정책, 매력 등으로 경쟁하는 정치구도를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헌법과 선거제도 개혁이다. 이 요체는 대통령 결선투표제와 중대선거구제 혹은 독일식정당명부비례대표제다. 하나 더 추가하면 2년마다 큰 선거를 통해 ‘한미FTA' ’연금개혁‘ ’조세재정 제도 개혁‘ 등 국가적 쟁점을 정리하도록 국회의원 선거주기를 2년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지방선거는 그 권능상 국가의 명운을 좌우해서도 안되고 할 수도 없는 선거다)
1987년체제의 짙은 그늘
오늘날 정치경제 사회지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1987년체제의 짙은 그늘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은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아래 내용의 99%는 내 책 <2013년 이후>에 있다)
1987년 체제는 국가, 시장, 사회에 대한 독재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철폐하고, 개인 및 집단의 자유로운 권리․이익추구의 자유를 보장하고,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가능한 나라를 지향했다. 또한 군부 독재세력과 3김씨, 민주․노동세력 등의 불가피한 타협으로 인해 공공(정치)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다. 그런데 그 중심세력들이 국가비전(경제사회 모델)도 취약했고, 국가를 책임질 주인(중심) 형성 문제에도 깊이 천착하지 않다 보니 시간이 가면서 그 그늘이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었다.
원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은 경제․산업발전의 초기단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산업이 성장하고 인민의 욕구가 천차만별로 분화되면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태우의 말대로 민주화가 개인과 집단의 욕구분출을 의미한다면, 아무래도 힘센 개인과 집단이 더 많은 욕구를 분출하고 더 많이 실현하게 되어 있다. 자신의 욕구를 좇아 각개 약진하는 존재들, 즉 재벌, 관료․공무원, 토건회사, 전문직능, 노조 등은 강한 국가나 정치에 의해 제어되든지, 경쟁자나 소비자에 의해 제어되든지, 하다못해 사회적 책임의식에 의해 제어되지 않으면 가치생산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안철수가 우려한 한국 IT생태계의 ‘삼성․LG동물원’화가 바로 그런 현상이다. 사실 법원, 검찰을 포함한 관료사회의 전관예우 현상도, 전현직 관료(부처) 커뮤니티가 민간업자들과 결탁하여 일종의 ‘마피아’처럼 되는 것도, 대․공기업 조직노동의 일자리가 대물림하고 싶을 정도로 엄청 좋은 일자리가 되어 버린 것도, 국가의 규제(면허증 발급 수, 독점적 권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부 전문직능이 청년인재의 블랙홀처럼 되어 버린 것도, 국토계획이나 도시계획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도―그래서 엉뚱한 곳에 지어진 초고층 아파트가 얼마나 많은가―,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인 상황에서 부동산 개발이익의 환수 메커니즘이 지극히 허술한 것도 하나같이 취약한 정치와 공공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가치․자원분배의 균형을 깊이 의식하지 않은 1987년 체제의 모순은 이익집단들의 권리․몫 찾기 투쟁이 이미 사회적 강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전개되면서 점점 극심해진다. 바로 이것이 한국 진보 정치세력의 대표적 맹점의 하나이다.
한국에서는 기업의 욕구분출의 자유를 사실상 무제한 허용한 자유시장 시스템이 초래한 파국적인 결과―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는 누구나 알고 있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국가, 특히 정치와 관료에 의해 훨씬 많은 가치와 자원이 분배되는 나라이다. 그런 점에서 1987년 체제 극복 문제가 깊이 고민되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 정치와 지식사회의 혼미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는 진보와 보수의 주류가 모든 문제를 리더십의 문제나 정권획득의 문제로 돌려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1987년 체제는 정치세력들이 대승적 견지에서 타협․절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적 교착 체제이자, 정치적 무능을 구조화한 체제이다. 당연히 이런 시스템은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쉽다. 대통령은 국회에게, 국회는 대통령에게, 여당은 야당에게, 야당은 여당에게, 언론과 국민들은 정치권 전체에게. 요컨대 1987년 체제는 독재 방지를 위해 책임정치, 유능정치를 많이 희생한 체제이자 정치적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 체제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은 대통령과 다수당에게 가기 마련. 그래서 역대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임기 말과 퇴임 후에 불행하게 되었다.
헌법 못지않게 국회의원 선거제도도 1987년 체제의 유전자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소선거구제 상대다수득표제는 1구2인 동반당선을 보장한 기존 선거제도보다는 당시 여당(민정당)에 불리한 제도로서, 구조적으로 여소야대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1988년 당시 1노(노태우)3김(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분열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여당(민정당)의 어부지리 책략과 서울과 호남에 집중된 지지기반을 가진 김대중의 책략이 결합하여 탄생한 제도이다.
민정당의 어부지리 책략은 3김의 근거지에서 표의 집중 현상이 예상외로 강하여 무력화되긴 했지만, 이 제도로 인해 유력 정당들의 지역 분할․독점구도는 매우 강화되었다. 1995년부터 실시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이들의 물적 기반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켰다. 기본적으로 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엄청난 부동산 개발이익을 사유화할 수 있도록 한 토지 소유제도 및 조세제도와 결합하여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를 국민 전체의 대변자가 아니라, 도로 뚫고 교량 놓고 공항 짓는 예산 등을 따와서 자신의 부동산 가치를 올려 주는 ‘지역(부동산)개발 일꾼’으로 전락시키려는 압력이 강한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구조도 부동산거래가 활발해야 세수(취득세, 등록세가 30%)가 느는 구조이다. 또한 지방의원 및 토호들의 다수도 부동산 개발업과 관련이 있기에, 이래저래 지방자치단체의 사업과 예산은 부동산개발 분야로 편중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몇 명이 나오든 1위 득표자 1명을 바로 대통령으로 확정하는 선거제도와 역시 1위 득표자 1명을 당선자로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분열이 숙명(?)인 진보진영으로 하여금 일대일 구도 형성을 위한 연대, 연합, 통합 담론(정치공학 담론)을 핵심 화두로 만들고, 국가비전을 뒷전으로 밀어 버렸다. 또한 소선거구제는 국회의원 후보자로 하여금 지역구민과 악수하고 포옹하고 식사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게 만드는 ‘땅개정치’를 강제함으로써 지적 수준을 더욱 떨어뜨렸다. 그런데 정치의 지적 수준을 결정적으로 떨어뜨린 핵심적 이유는 정당의 총체적 부실과 깊은 관련이 있다. 정당의 부실은 대통령제의 숙명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한국이 특별히 심한 것은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여당을 따로 가게 만드는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이념정책을 공유하는 정치집단을 독자정당으로 유지하도록 하면서 선거시기에 원칙을 가지고 연대하게 만드는 결선투표제 부재의 탓이 크다. 또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와 지역독과점 체제와 비전, 정책능력이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게 만드는 공천제도 등도 무시 못 할 요인이다.
1987년 체제는 시장과 사회에 대한 권력의 부당한 억압을 철폐하고, 개인, 기업, 집단의 자유로운 권리․이익추구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했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숙성된 국가비전과 정교한 개혁프로그램 없이 단지 “나쁜 짓을 안 하고, 나쁜 짓을 반대”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다 보니, 비전이나 건설 프로그램이 취약했다. 시민운동도 “나쁜 짓을 감시하고, 폭로하고, 규탄”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노동운동은 가치생산생태계의 건강성이나 사회적 기여․부담과 권리․이익의 균형=공평에 대한 생각 없이 자신의 호주머니에 더 많은 잉여를 쓸어 담는 운동으로 일관하였다. 그 과정에서 중시된 가치가 반독재, 탈권위, 반부패, 불간섭(당정분리), 도덕적 신뢰, 투명, 분권, 참여, 강한 노동권 등이다. 당연히 공정, 공평(합리적 불평등), 미래비전, 전문성, 유능함 등은 상대적으로 중시되지 않았다.
새로운 체제 건설이라는 종합적인 비전 없이 대통령 권력에 대해서만 견제․감시장치를 집중하여 약화시키자, 중국 주나라 왕실이 약화된 후 도래한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양상이 벌어졌다. 단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탈권위의 기치 아래 스스로 놓아 버린 제왕적 권력은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를 연상케 하는 재벌, 은행, 검찰, 경찰, 법원, 관료(국세청, 금감원 등), 거대 언론사, 여당 중진 등이 나눠 가지고 치열한 영역 싸움을 하게 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챙긴 것이 검찰, 재벌, 언론사일 것이다. 정치의 혼미․무능과 민주화․자유화를 틈타 공공적 마인드는 취약하지만 재력, 조직력, 이데올로기(신자유주의, 사민주의) 등을 가진 관료, 재벌, 토건족, 언론, 직능협회, 노조 등의 정치사회적 힘이 급성장하였다.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선출권력은, 특히 진보적 선출권력은 이들 거인들에게 겹겹이 포위되어 포박․포섭당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검찰공화국’, ‘재벌(삼성)공화국’, ‘조중동공화국’, ‘김앤장공화국’과 특정 부처의 이름을 딴 ‘마피아’(모피아, 세피아 등) 등이다. 그 결과 보수적 선출권력(이명박 정부)이라 하더라도 껑충 자란 비선출권력을 과거처럼 좌지우지하지는 못하고 있다.
1987년 체제는 재벌, 노조, 언론, 관료 등이 앞 다투어 내 자유, 내 권리, 내 이익 찾기의 각개약진을 촉진하였다. 따라서 공적 통제․조정장치가 취약하면 재벌 등 힘센 이익집단들은 저수지 생태계를 황폐화하는 황소개구리로, 몇 년간의 높은 소출을 위해 아름드리 숲에 불을 싸지르는 화전민으로, 기여․부담에 비해 훨씬 많은 권리․이익을 누리려는 도적떼로 돌변하기 쉬운 체제라고 보아야 한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지구촌을 휘감은 민주화, 자유화, 개방화, 중국의 부상 등으로 인해 실력 있는 개인, 기업과 그렇지 않은 존재의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지구촌 정치경제의 환경과 맞물렸다.
재벌대기업의 노사가 대립하면서도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담합하여 초과이익을 챙기는 모습에서 보듯이, 영남과 호남에 배타적 지지기반을 가진 양대 정당의 적대적 의존체제에서 보듯이 1987년 체제는 보수 기득권과 진보 기득권의 담합체제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1987년 체제는 가치생산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양극화를 완화하며 국가 전략과제 추진능력을 매우 약화시켰다. 이는 정치집단과 지식사회가 대한민국의 위치․방향감각―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을 상실하면서 더욱 악화되었다. 개인과 기업의 탁월한 변신․적응능력과 국가시스템의 형편없는 변신․적응능력의 충돌이 점점 더 격렬해지게 되었다. 국민의 고통과 불만도 심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토머스 제퍼슨이 살았던 시대에 ‘전제군주’나 ‘폭군’이 민주주의의 주적이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서 제1의 적은 부실한 정치이고, 제2의 적은 부실한 공공이다. 여기에는 지식사회, 행정, 사법, 언론 등이 주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민주적 통제도 없이, 권력 상호간 감시․견제도 없이 활개 치는 ‘정치적 제후국’들과 자신의 사회적 기여․부담에 비해 과도한 권리․이익을 추구하는 약탈적 마인드는 무엇보다도 둔감하고 혼미하고 유약한 정치에 책임이 있다.
왜 1987년 체제의 짙은 그늘이 논의가 되지 않을까?
1987년 체제를 뛰어넘기 위해 힘찬 도움닫기를 해야 할 시점에 이 체제의 짙은 그늘에 대한 논의조차 빈약한 현실은 아이러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모든 모순부조리는 사람(리더십, 노선, 정권)의 문제, 제도(체제)의 문제와 좀체 변화시키기 힘든 환경․문화의 문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데, 여기서 제도의 문제를 예리하게 구분하는 것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정당들은 자신이 하면 잘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선전하기에 대중들이 제도의 문제를 인식하려면 사람(정권) 교체에 의한 변화가 실패하는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되어야 한다. 물론 뛰어난 정치가와 경세가가 있으면 이 과정을 단축할 수는 있을 것이다.
둘째,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선거제도, 지역주의와 결합한 소선거구제 상대다수득표제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등이 가치, 비전을 뒷전으로 내몰고, 증오심에 근거해 1등만 목표로 하는 정치공학 정치, 지역대표 일꾼정치, 바닥만 훑는 ‘땅개정치’를 만개시키고, 극좌나 극우가 독자정당으로 조기에 심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이 체제가 독재 및 보수세력과의 타협에 의해 탄생했고, 서로가 서로의 손목과 발목을 잡는 정치적 교착 체제이기에 남(정적) 탓하기가 좋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 87년 체제를 주도적으로 만든 민주․노동세력의 상당수는 상대를 압도하는 힘을 갖지 못해서 살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정리해고 문제, 비정규직 문제, 자영업 문제, 청년실업 문제 등은 노동의 힘이 약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남 탓은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자본과 노동 간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정부)과 국회 간에도 일어난다.
넷째, 1987년 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영웅적인 투쟁으로 훈장을 주렁주렁 단 사람들이 아직은 팔팔한 중년으로 정치와 사회의 전면에 서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그 뒤 세대(20~30대)가 공적 가치보다는 사적 가치(개인주의)에 경도되어 정치, 시민운동 등 공공영역에 많이 진출하지 않아서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다섯째, 이 영웅들이 국가비전으로 일어선 것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로 일어선 것이 아니라, 선과 악, 민주․반민주 구도가 선명했던 시절 정치공학으로 일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뒤늦었지만 2010년대 중반경에 비로소 ‘복지국가’라는 비전을 가지고 ‘국가비전’ 정치를 하려고 나선 사람들조차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가 일천하여 앙시앵 레짐 전체를 혁파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비전은 반쪽짜리 비전―2차 분배구조인 조세재정(복지) 개혁전략이 핵심이었다―이라기보다는 반신불수의 비전이라고 보아야 한다. 정상 비전에 대해 50%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10% 수준의 힘만 발휘하니까!
여섯째, 이명박 정부의 급격한 역주행과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1950년대 화석(보수)과 1980년대 화석(진보)의 맹동주의가 적대적 상호의존 체제에 생명수를 계속 들이부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결선투표제-정당명부 비례대표제-선거 주기 단축 없이 코리아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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