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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ground/강빛나래

4대강 사업과 비례대표제

4대강 사업과 비례대표제



나는 토목공사로 땅값을 올리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환경을 사랑하고 환경을 더 보전하기를 원한다. 나는 이 나라의 한 국민으로서 이러한 나의 정치적 의사가 무시당하지 않고 국가정책에 반영되었으면 좋겠다. 따라서 비례대표 의석비율이 늘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현 소선거구 최다득표제 하에서는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보전을 지역의 몇몇 소수가 지지한다 하더라도, 후보들이 그 민의를 정책공약으로 담아내고 비중 있게 다뤄줄 동기가 적다. 어차피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다만 그 소선거구 안에서 최대다수의 표를 획득할 의견이기 때문이다. 그 외 의견은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밀어봤자 소수표를 끌어모을 뿐이고, 국회의원 당선 못 시킨다. 그 선거구에서 최대다수표가 아니라는 이유로 '선거구 소수의견'은 결국 국회에서 표현될 기회를 박탈당한다.

현실에서 선거구 최대다수의견은 대체로 환경을 보호하자는 의견보다 토목으로 지역땅값을 올리자는 의견인 경우가 많다. 최대다수라는 점에 주목하자. 예를 들어, 2010년 8월 10일자 중앙일보기사에서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당해 8월 6일 여론조사 결과, 4대강 찬성 응답이 43.3%로, 4대강 반대 응답 42.7%를 약간 앞질렀다고 한다.
 기사 참조 : "4대강사업 찬성이 반대 여론 처음 앞질러" (중앙일보 2010년 8월 10일자)  ▶기사 원문 보기

이 숫자에 근거하여 지나친 단순화 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꽤 현실에 부합하는 선거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 선거구에서 투표로 표시된 의견은, 4대강 찬성의원에 43.3%이고 반대의원에 42.7%이다. 반대의견 42.7%는 정치적으로 생명을 잃어버리고, 43.3%의 표를 받은 찬성의원만 국회에 진출한다. 이제 이 시나리오를 전국에 확대해보자. 각 선거구마다 4대강 찬성의원이 반대의원 42.7%를 약간 앞질러 43.3%를 획득하였고, 그렇게 각 선거구마다 4대강 찬성의원이 당선되었다. 국회에는 이제 4대강 찬성의원만 모인다. 4대강 사업의 중지 없는 단행이 채택된다. 아니, 지속여부를 논할 필요가 있는지조차 문제 제기되지 않기 때문에, 당연하게 국회는 다른 법안들을 갖고 씨름하지, 4대강이 국회 내 이슈가 되지는 못한다. 국회 밖 반대의견의 매몰참에 비해, 국회 안에서는 저지는커녕 문제제기조차 매몰차게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정당 별로 표를 전국적으로 집계하여 의석을 배분하면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지속 가능한 개발과 환경보전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인구가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정책을 구상해내는 정당을 지지한다고 할 때, 그 지지율만큼 의견이 국회 안에 보다 정확한 발언력으로 대표될 수 있다. 거칠게 말해서 4대강 반대의견 42.7%만큼 4대강 반대의원들이 국회의석의 최대 42.7%까지도 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지역 안에서 소수의견이라 하더라도 그 지지인구를 전국적으로 집계하면 여느 지역구 한 두 개 인구를 초과하고도 남을 수 있는 법. 그 소수의견이라는 게 4대강 사업 반대의 경우, 응답율 42.7%였다.

현재 소선거구 최다득표제 (지역별 최대다수대표제) 하에서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친환경보전정책을 지지하는 국민이 국회에서 국민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 의견을 대표할 국회의원, 공략화하여 실행할 국회의원이 없으니 말이다. 현 제도하에서는 토건반대, 환경보전을 지지하는 인구가 발언하고 의사 결정할 기회를 그 인구비율만큼 얻지 못하고 있고, 반대로 토건공약 지지인구는 단순히 지역별로 최대다수라는 이유로 그 실제 인구수보다 훨씬 많은 발언기회와 의사결정력을 얻는다.

아무리 토건공약을 지지하는 인구가 전국적으로 다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곧 토건반대, 환경보전을 지지하는 인구가 대표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수 의견을 가진 이는 국민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1인 1표, 한 사람이 동등한 발언권을 갖는다는 원칙이 어디로 갔는가? 적어도 나는 나의 이러한 의견이 국회까지 도착하여 입법을 둘러싼 공방 가운데 제대로 된 발언의 기회, 청문의 기회를 얻기라도 하면 좋겠다. 그것이 보다 공정한 게임의 룰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높은 지역구 의원비율과 낮은 비례대표의원 비율은 전국적으로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환경보전을 지지하는 인구를 충분히 대표하기에 불비례(不比例)하다. 따라서 나는 비례대표제가 획기적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비례대표제가 당장 4대강으로 이미 파괴된 환경을 저절로 원상 복구하는 것도 아니고, 모든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고속도로 하나, 원전 하나, 쓰레기 소각장 하나, 쇠고기 수입 하나, 사안 하나하나 마다 풀어야 할 실무적인 문제들과 치열하게 부딪힐 이해관계들이 복잡하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적어도,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속 가능한 개발과 환경을 생각하는 의견들이, 환경파괴에 아파하는 그 인간적인 감수성들이 더 이상 국회 밖에서 농성하는 목소리로서만이 아니라, 합법적인 대의기구라고 하는 국회 안에서 토론과 합의와 의결과정에 조금이나마 합법적으로 대변될 수 있다면, 지금과는 다르리라 생각한다. 백 번을 양보해서 설사 4대강 사업을 강행한다 하더라도, 국회 안에서 환경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정당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그 문제제기에 일부나마 답이 제공되어 문제가 풀려야지만 법안이 통과될 수 있는 조건이라면, 그렇게 해서 통과된 4대강 사업 강행안이라면, 한번의 제대로 된 치열한 공방과 검토 없이 실행되는 강행안과는 질적으로 다르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지난 4월까지 4대강 공사 때문에 20명이 죽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필요한 곳에 감시와 규제가 더 강해지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분명한 것은, 이렇게 룰을 고쳤을 때, 소위 4대강 골수 찬성파 또는 극우파도 그 득표율만큼 국회에 진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화 한번 없이 그 의견들이 사표가 되느니, 국회 들어와도 좋다. 내가 반대하는 의견일 지라도 비례대표제를 통해 국회에서 대표된다면, 민의라서 대표된다면, 국회에서 서로의 우선순위와 가치, 목표를 나누며 의사결정에 이루는 가운데 최악은 막는, 더욱 최선으로 나아가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지 않을까?

설령 현 소선거구 최다득표제는 그대로인데, 다만 민심이 천지개벽하여 내가 사랑하는 환경보전정책이 소선거구에서 최다수를 획득한다고 하자. 따라서 내가 사랑하는 정책이 과대 대표되는 행복한(?!)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그 과대대표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딴지를 걸겠다. 내 정치적 의사가 존중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만큼, 다수라고 힘으로 밀어 부쳐도 괜찮은 게임의 룰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 바람은 환경을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정책이 현실 가운데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만큼이나 순수하며 한 점 부끄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