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현대 민주주의의 두 기둥: 다수결 원칙과 대의제 민주주의
현대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다수결 원칙과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democracy)는 그리스어인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이 단어 속에는 인민(demos)이 지배(kratos)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즉 민주주의는 군주제나 귀족제와는 달리 인민이 지배하는 통치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민주주의에서의 정당성은 다수의 인민이 지지하는 바, 다시 말해서 다수결의 원칙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또 다른 특징인 대의제 민주주의는 사회구성원의 규모가 커지고 다원화되면서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고대 민주주의에서는 노예와 여성의 참정권을 제한하고 전체 인구의 6분의 1에서 10분의 1정도만이 정치에 참여하여, 계층적 차이도 크지 않고 비교적 동질적인 집단이었다. 따라서 시민들이 추첨을 통해 통치자를 선발하고 직접 민주주의도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계층간 차이가 매우 크고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얽혀있어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통치 집단을 선출할 수밖에 없다. 즉 사회 전반적인 구조적 이유에 의해서 시민과 정치인들 간에 이른바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가 설정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과 대의제 민주주의를 기둥으로 서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민주주의의 다양성: 배제의 정치 vs. 포괄의 정치
그러나 현실정치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이 ‘어떻게’, 그리고 ‘어느 정도’ 실현되고 있는지는 각 국의 정치제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수결의 원칙 하에서 최소한의 다수만 확보할 것인지 아니면 가능한 많은 다수의 목소리를 반영하려 할 것인지에 따라 제도의 디자인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의제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정당들이 얼마나 사회의 다양한 이익들을 수렴하여 대변하는지, 다시 말해서 어느 정도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확보하는지에 따라 그 형태가 다양하다.
이와 같이 같은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정치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배제의 정치(politics of exclusion)가 될 수도 있고 포괄의 정치(politics of inclusion)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배제의 정치는 가급적 승자에게 많은 권한을 몰아주는 제도이다. 적어도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승자가 원하는 바가 정책결정과정에서 통과된다. 따라서 약자나 소수자 혹은 반대세력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포괄의 정치에서는 구조적으로 승자독식이 어렵기 때문에 상호 간 협력과 타협이 일상화된다. 여기서는 가급적 많은 계층의 의사를 정책결정과정에 반영하므로 사회적 약자나 반대그룹에 대한 배려와 포용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렇다면 결국 민주주의의 가치가 더욱 잘 반영되는 것은 배제의 정치라기보다는 포괄의 정치라고 할 수 있겠다. 포괄의 정치는 다수결의 원칙에 있어서도 가급적 많은 다수를 확보하려하고, 대의제에 있어서도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와 타협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정치개혁이란 포괄의 정치가 보다 잘 작동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한국의 정치개혁 방향: 배제의 정치에서 포괄의 정치로
한국은 포괄의 정치보다는 배제의 정치가 강하게 나타난다. 특히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맞물리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관찰된다. 주요 정당들이 지역선호에 의존하더라도 충분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이나 이념 대결이 아닌,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신생 정책 정당들이 의미 있는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욱 큰 문제는 승자독식을 유발하는 현재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가 이러한 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킴으로서 배제의 정치가 심화되는 악순환을 만든다는 것이다.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지역구에서 상대적 다수를 확보한 1등만 당선되는 제도이다. 따라서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는 것을 꺼리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비록 자신의 선호와 가장 유사하더라도 1위로 뽑힐 가능성이 낮은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선거제도 하에서는 지역 지지기반이 취약한 신생 정책 정당들이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는 지역주의가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으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인해 선거에서 그 결과가 반영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17대 총선에 한나라당은 부산지역에서 총 18개의 의석 중 17개를 차지하여 94% 의석점유율을 확보했다. 결과만 보면 지역주의가 전혀 완화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한나라당이 얻은 득표율은 겨우 52%에 불과했다. 거의 절반의 시민들이 다른 당을 지지한 것이다. 하지만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인해 결과가 왜곡되어 마치 지역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한국에서 배제의 정치가 확장하는 핵심뿌리는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정치의 개혁은 선거제도 개혁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 방향은 포괄의 정치를 가능케 하는, 즉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점유율 간의 비례성을 높여 사회적 다양한 갈등과 균열이 정당정치를 통해 정책결정과정에 반영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한편, 선거제도 개혁은 필연적으로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과 연결된다. 만약 우리의 구상대로 한국에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가 도입되면 한국의 정당구도는 정책정당들로 구성된 온건다당제의 형태로 정착될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제 하에서 온건다당제가 유지되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이중대표성의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온건다당제 하에서는 여소야대의 국면이 형성되어 국회에서 의사결정의 주도권은 야권이 갖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대통령과 국회간 대결국면이 고착화되어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양자 모두 국민으로부터 직접 선출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책의 불연속성의 문제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큰 폭의 정책변화가 나타나면서 국가의 장기적 정책 비전이나 철학이 지속되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한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목표는 적어도 2~30년간 꾸준한 투자와 준비가 필요한 것인데, 5년 단위로 반복되는 대선을 거치면서 이러한 중장기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리란 것이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있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의원내각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회에서 연립정권을 만들어 정부를 구성하므로 이중대표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중도좌우파 정당들이 꾸준히 연립정권에 가담하기 때문에 정책의 연속성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4. 개혁의 순서와 속도: 선 선거제도 개혁, 후 권력구조 개편
결국 개혁의 핵심은 비례대표제의 전면적 확대와 의원내각제 혹은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에 있다. 그렇다면 개혁의 순서와 속도는 어떠해야 할까. 우선 권력구조 개편에 앞서 선거제도 개혁이 우선되어야 함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권력구조만 의원내각제로 개편 된다면 각 지역의 유력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과두체제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정한 지역 내에서 일정 지분만 확보하면 연립정권에 가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당간 정책 대결은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신생 정책 정당들도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개혁의 방점은 우선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정책정당 정치의 활성화에 둬야 한다. 이것이 갖춰진 후에서야 비로소 권력구조의 개편도 포괄의 정치를 가능케 할 수 있는 것이다.
5. 세부개혁안: 비례대표제의 확대와 분권형 대통령제 도입
①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 유지
한번에 모든 것을 바꾸는 혁명이 아닌 이상, 개혁안은 이상과 현실을 모두 감안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개혁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실의 반대는 최소화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면 비례대표제나 독일식의 연동제는 최종 목표로 삼을 수 있으나 당장에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엇보다 기존의 제도하에서 당선되었던 정치인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국민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선 현재 한국의 선거제도인 소선거구-비례대표제 병립제의 틀을 유지하면서 비례대표제의 비율을 올려 전반적인 비례성을 높이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② 의원정수의 확대: 299에서 400으로
기존의 지역구를 줄이는 것은 국회의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따라서 의원정수를 확대하고 그 확대한 인원만큼을 비례대표로 확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각 국의 적정 의원수는 인구의 세제곱근으로 계산한다. 한국의 총 인구를 5천만이라고 한다면 국회의원수는 대략 364명이 된다. 하지만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를 보면 대개 이보다 많은 수의 국회의원을 확보하고 있다. 보다 양질의 의료서비스와 법률서비스를 위해 국민 일인당 많은 의사와 변호사가 필요하듯, 보다 좋은 정치서비스를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정치인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국제적 기준을 바탕으로 하더라도 한국의 국회의원 정수를 400명 가량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표 1> 세제곱근 법칙과 실제 의석수 비교
국가명 | 실제의석수 | 세제곱근수 | 차이 |
스웨덴 | 349 | 207 | 142 |
핀란드 | 200 | 173 | 27 |
덴마크 | 179 | 175 | 4 |
그리스 | 300 | 220 | 80 |
영국 | 659 | 391 | 268 |
이탈리아 | 630 | 386 | 244 |
프랑스 | 577 | 391 | 186 |
독일 | 598 | 437 | 161 |
일본 | 480 | 503 | -23 |
미국 | 435 | 655 | -220 |
한국 | 299 | 364 | -65 |
출처: CIA, World Fact Book 2002 (재인용: 서복경, “한국 선거제도의 특성과 변천과정”, 『입법정보』제100호, 2003)
현재 299명의 국회의원 중 비례대표로 선출되는 의원은 56명에 불과하지만 의원 정수를 400명으로 늘리고, 이 때 증가한 수를 비례대표로 확충하게 되면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이 243:157, 즉 대략 3:2 정도의 비율이 된다. 지난 2004년 선거이후 부족하나마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통해 이념정당들이 등장하고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음을 기억할 때, 비례대표의 비율이 3:2 정도로 대폭 확대된다면 적어도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정책 정당들이 한 두 개 정도 등장 할 수 있을 것이다.
③ 비례대표는 전국 단일 선거구로
단, 이 때 양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비례대표제의 선거구를 가급적 크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와 같이 소선거구와 비례대표 병립제를 구성한 일본의 경우도 그 비율을 5:3으로 하였으나 비례대표의 권역을 11개로 나누어 충분한 비례성을 확보하지 못하였다. 즉 소수정당의 과소대표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비례대표의 전체 비율을 올리는 것만큼 비례대표의 권역을 가급적 크게, 가능하면 현재와 같이 전국단위로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④ 권력구조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권력구조는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나 한국의 몇 가지 특성들을 고려했을 때, 우선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일단 많은 국민들이 의원내각제에 대해 생소한 느낌을 갖고 있는 한편, 대통령제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있다. 또한 남북으로 분단된 상황 하에서 유사시 가급적 빠르고 신속한 군사·안보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따라서 외교·안보와 관련한 권한은 대통령에게 위임하고 그 밖의 분야는 총리가 행사하는 프랑스식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모색하는 것이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력구조의 개편 문제를 선거제도 개혁과 연계시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칫 개혁의 초점이 분산되어 문제를 보다 복잡하게 만들 수 있고, 특히 개혁과정에서 선거제도뿐만 아니라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한 비토 세력까지 연대하여 개혁의 반대 세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은 선거제도 개혁에 집중하여 비례대표제의 비율을 높이고, 권력구조의 개편작업은 이러한 개혁으로 등장하게 될 새로운 세력들에 의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것이다.
6. 선거제도 개혁안 관철 전략
① 개혁의 목표시기: 2016년
2012년을 선거제도 개혁의 원년으로 삼기에는 다소 촉박한 면이 있다. 2016년을 목표로 삼는 것이 보다 현실성 있는 계획일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권력구조의 개편작업은 그 이후에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선거제도 개혁 작업이 빠르게 진척되어 2012년 대선이 끝난 직후인 2013년 혹은 2014년에 성공한다면, 그 이후부터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된 작업을 진행하여 2017년에는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선출되는 분권형 대통령제의 도입을 구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② 주요집단별 시행전략
- 초당적 정치기업가 연대
선거제도 개혁의 씨앗은 공익 정치기업가에 달려 있다.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정치개혁의 핵심임을 깨닫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슈화할 수 있는 유력 정치인들이 오피니언 리더가 되어 적극적으로 아젠다 셋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들은 당론으로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결국 개혁의 단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개혁적 의원들에게 달려있다고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 소장파와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나라당의 원희룡, 남경필, 김성식, 그리고 민주당의 천정배, 김부겸, 임종인 의원 등에게 일정한 역할을 요구하도록 해야 하고, 이들과 진보정당 내의 노회찬, 심상정 의원 등과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는 그룹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초당적 합의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개혁의 진정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은 선거제도 개혁과 관련한 토론회 개최 등을 열어 각 당의 대표선수들을 모으고 여기에서 초당적 논의가 시작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이들간 정기적인 자문위원 미팅을 주선하여 이들간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케 해야 한다. 이런 모임은 다소 느슨하더라도 꾸준하게 지속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제도 개혁의 적절한 타이밍이 도래했을 때, 서로 연대하여 전국적 의제화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정치개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정당 내부의 세력화
인물 중심으로 재편되어 있는 현재 당내 계파모임들에 대항하여 한나라당 소장파와 민주당 개혁파들이 선거제도 개혁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당 쇄신 및 세력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최근 한나라당 소장파들이 황우여 원내대표를 당선시킨 이후 당내 주도권을 잡으려는 과정에서 오히려 또 하나의 정치적 당파싸움이라는 역공을 받으면서 그 동력을 잃어버렸다. 이와 같이 당내 소장파나 개혁파들이 국민들로부터 지지받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한, 당 안팎에서 생존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정치기업가들은 정치개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동시에 당내 개혁파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 국민 설득과정: 복지이슈를 선거제도 개혁으로 연결시켜야
개혁의 지속성과 성공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이른바 정당성 확보전략(strategy of justification)을 제대로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쉽고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이것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에 성공한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대개 대규모의 정치적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지면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게 되고, 이 때 정치기업가들이 그 원인을 선거제도와 연결시키면서 전국민적 호응을 얻어내어 개혁으로 연결시켰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민감한 촉수를 동원하여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이를 꾸준히 선거제도 문제와 연결시켜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등 이른바 복지 이슈들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 열망을 선거제도 개혁으로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비례대표제가 강조하는 포괄의 정치야말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복지이슈들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제도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도 매우 타당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 주요 이익집단: 2~30대 중심의 대학생, 시민단체 등 조직화 필요
대중적 운동성을 확보한 집단들을 네트워킹해야 한다. 특히 이른바 ‘노빠’, ‘유빠’ 등과 같이 기성세대의 정치에 대한 불만을 가지면서 개혁의 바람에 쉽게 올라탈 수 있는 2~30대들을 조직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각 정치기업가들이 확보하고 있는 대학생조직을 비롯하여 여러 시민단체, 그리고 청년유니온이나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전국등록금네트워크 등과 같은 기존의 젊은 전국조직들과 비례대표제에 대한 논의 창구를 마련하여 지속적인 네트워크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이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일단 비례대표제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이 이뤄지면 빠른 속도로, 대규모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
- 개혁적 지식인 그룹과 언론 활용
지식인 그룹들은 이론적으로 개혁의 동력을 마련해주면서 언론을 통한 공중전에서의 지원사격을 지속적으로 해줄 수 있다. 특히 의원정수의 확대 등과 관련한 문제는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하더라도 국민들의 반발을 의식하여 정치권 내부에서 나오기 힘든 이슈이다. 평소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이러한 의원 정수의 확대와 관련하여 적극적인 의사를 개진하고 공신력 있는 시민단체들이 이를 지지하면서 운동으로 전개한다면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정치개혁 로드맵이 수정, 보완되면서 지속되기 위해서는 각 개혁주체들을 총체적으로 조직하고 구상하는 집단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경영연구소와 PR포럼의 등장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우선 여야의 주요 공익 정치기업가들과 개혁적 지식인들을 느슨하게나마 하나로 묶고 있을 뿐만 아니라, 비례대표제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2~30대 청년그룹들을 조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체를 허브로 하여 각 개혁 집단들을 서로 엮어 가면서 정치 개혁의 로드맵을 지속적으로 그려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