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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ground/김경미

비례대표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

비례대표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



선거철이 다가오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정치권과 시민사회 곳곳에서 일어난다. 대의민주주의 사회하에서 선거는 국가 정책에 국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학 내 부재자 투표소 설치를 위한 노력이나, 20~30대 젊은 층의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캠페인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관심과 노력에 비해, 그 표가 사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는 우리 사회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투표함까지 가게 하는 데는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하지만, 정작 투표함에 들어간 우리의 ‘표=민의(民意)’가 국회 의석이나 정부를 구성하는 데 실제로 반영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사표를 줄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의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1위 대표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제도는 최고 득점자를 당선자로 정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하에서는 1위와 2, 3위가 아무리 근소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고 해도, 1위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자에게 주어진 표는 모두 사표가 되어 버린다. 즉, 1위와 2, 3위가 득표율에 있어서 35% 대 34% 대 31%라는 초박빙의 결과가 나왔다고 할지라도, 1위를 제외한 나머지 65%의 표는 무효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1위 대표제의 가장 큰 맹점이라고 할 수 있다. 거대 정당은 유권자들에게 받은 실질 득표율에 비해 훨씬 많은 국회 의석을 가지는 데 반해, 군소 정당들은 반대로 그들이 받은 실질 득표율에 비해 턱없이 적은 국회 의석을 가지게 된다.
 

한 예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그나마 부분적으로 1인 2표제의 비례대표제가 도입되고 난 이후 민주노동당은 13%의 득표율을 얻어 ‘무려 10석'의 국회 의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만약 2004년 총선이 전면 비례대표제하에 이루어졌더라면, 13% 득표율에 따라 299석의 의석 중 39석을 얻었어야 옳다. 무려 ‘10석을 얻은 것이 아니라’ 무려 ‘29석을 사실상 잃어버린 것’이다. 즉, 29석이라는 의석을 ‘과대 대표’된 두 거대 정당인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나누어주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한 석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볼 때, 현재 우리 선거제도의 불비례성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다. 이렇듯 비례성이 낮은 선거제도하에서 기존의 거대정당들은 계속해서 과대 대표되고, 군소 정당들은 과소 대표되는 경향을 띄게 된다.
 

이런 선거제도에서는 아무리 득표율이 낮다고 하더라도 1위만 하면 되기 때문에 당선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게 된다. 지역감정에 호소하여 표를 얻고자 하고, 뚜렷한 이념에 기반을 둔 정책 입안 능력을 갖춘 사람보다 사람들에게 표를 얻기 유리한 인기인을 후보자로 내세우게 된다. 따지고 보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주의와 인물 중심의 정당 구조는, 소선서구 1위 대표제로 인해 점점 악화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을 한 선거구로 하는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하에서 시민들은 자기 지역구의 개별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한다. 즉, 우리 동네 홍길동이나 김영희 후보가 아닌 민주당, 한나라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선진당, 사회당, 녹색당 등 정당에 투표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의 성격이 인물에 대한 평가가 아닌, 정당에 대한 평가 즉 정당 간의 경쟁을 의미하게 된다. 이로 인해 각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 노선의 중요성이 급상승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인기 높은 명망가나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스타가 아니라, 이념과 정책 지향이 뚜렷하고 이를 정책으로 입안해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인이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인을 많이 확보한 정당일수록 시민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기존의 지역과 인물 중심의 선거 풍토는 가치와 이념, 정책 대결 중심의 선거로 바뀔 것이고, 이는 정당정치의 선진화를 견인하게 된다.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가진 정치적 효과는 이 뿐이 아니다. 2004년의 부분비례대표제 도입으로 민주노동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하게 되었던 것처럼,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새로운 정치 세력과 군소 정당의 원내 진출을 용의하게 해 준다. 이로 인해 정치적으로 대변되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이해가 제도정치권 내에 반영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많아지고, 다양한 여론을 반영하는 이념과 정책 중심 정당의 정치적 진출을 보장해 주게 된다. 이는 기존 거대 정당의 경쟁력을 제고시켜 한국 정치가 이념과 정책 중심의 정당 정치로 나아가는 데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줄 것임에 틀림없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자신들이 이념과 정책 지향을 놓고 경쟁하는 경기와 같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거 ‘제도’란 경기 ‘규칙’을 의미한다. 경기 규칙이란 한번 정해지면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은 그 규칙이 공정하든 아니든 그에 따라 경기를 치러야 하고, 결과에도 승복해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하에서 경기 규칙이 공정한지 공정하지 않은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쳐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선거구 1위 대표제는 불합리한 경기 규칙
 

이런 점에서 한국의 소선거구 1위 대표제는 경기 규칙으로 말하자면 늘 이기던 이가 계속 이기게끔 설정해 놓은 불합리한 제도다. 선수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갈고 닦은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혹시나 반칙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하고, 자신을 방어하는 데 힘을 쏟게 만드는 제도다. 그리고 기존의 힘 있는 소수의 목소리를 더 크게 해 주고, 힘은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는 늘 공중에 사라지게 하는 선거제도다.
 

이런 구도하에선 진보도 보수도, 그 어떤 정치 세력도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경기 규칙이 공정하지 못한데 어떻게 페어플레이가 이루어지겠는가. 행여 페어플레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패자가 그 결과에 승복하기란 쉽지 않다. 한 두 번의 패배는 인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억울하게 지는 것이 영속할 거라고 판단되는 경우, 패자의 억울함과 분노의 크기는 배로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분노의 감정이 한 개인이 아닌 특정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확대될 경우, 그 사회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질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 사회는 늘 상시 갈등의 상황 속에 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필자가 속한 정치경영연구소에서는 한국 현실에 적합한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연구, 교육 및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하였다. 연구소 산하에 PR(비례대표제의 영문약자 - Proportional Representation)포럼을 두고, 비례대표제 도입에 동의하는 학자, 정치인, 언론인, 시민활동가, 학생, 시민들과 함께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제도적 대안으로서 비례대표제 도입의 적실성 및 도입 방안을 연구하고, 이를 위해 함께 뛰어줄 2030세대 교육 및 정치 기업가들을 양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음번에는 이를 위해 좀 더 구체적인 청사진들을 독자들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때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방안으로, “지금, 여기서, 우리 이것 같이 해보면 어때요?”라는 제안을 들고 여러분 앞에 섰을 때, 부디 떨며 내민 손 잡아 주시길 간절히 또 간절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