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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욱(원희룡 의원실 보좌관) - 기독청년들이 비례대표제 확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PR 라운드테이블>

기독청년들이 비례대표제 확대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손정욱(원희룡 의원실 보좌관)



 

1. 들어가는 글

 

- 411일 총선을 한 달 가량 앞두고 여의도가 크게 요동치고 있음. 특히 20년만에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는 만큼 그 어느 선거보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 이번 총선의 승패가 곧이어 치러질 대선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임.

 

- 총선이 눈앞에 다가오면서 각 정당은 얼마나 새로운 인물들로 자신들의 진영을 구축했는지를 놓고 경쟁을 펼치고 있음. 어떤 인물이 사라지고, 어떤 인물이 등장하느냐가 (정치()를 싫어하는) 일반 시민들에게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개혁의 모습이기 때문임.

 

-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런 인물교체의 모습은 총선때마다 반복되어왔음을 알 수 있음. 지난 16대부터 초선의원의 비율을 보면 다음과 같음.

16대국회: 112(41%), 17대국회: 188(63%), 18대국회: 134(45%)

 

- 대선은 이런 인물 중심의 경향이 훨씬 심함. 그야말로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울만큼 엄청난 권한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임. 하지만 진보, 개혁 진영에서 기대를 모았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연이어 등장했음에도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음. 그 결과 서민 경제만은 살려달라는 아우성으로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으나, 그 결과는 더욱 참담했음. 예컨대, 양극화의 척도로 사용되는 소득불평등지수와 지니계수 역시 김대중 정부이후에도 그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음. 또한 2011년 현재 한국에 빈곤층 규모는 무려 740만명에 이르고, 그 중에서 국가로부터 어떤 직접적인 혜택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은 사람이 무려 580만명에 달함.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580만명의 국민들이 그야말로 사회에 방치되어 있는 것임.

 

- 이쯤에서 드는 의문은 어떻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임. 민주주의라 함은 시민들 다수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인물 혹은 집단이 정책결정권한을 갖게 되는 것인데, 어떻게 시민의 대다수인 서민과 빈곤층의 삶은 갈수록 나빠지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길래 이렇게도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무시되는 것일까? 그리고 아무리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도 왜 정치는 바뀌지 않는 것일까? 이것이 이 글이 던지는 핵심 질문임. 이것에 대해 원인을 찾고 나름의 해결 방안을 제시해보고자 함.

 

- 사실 이 질문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집단이 바로 기독교그룹이라고 생각함. 성경은 끊임없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임. 미국의 대표적 복음주의 목회자이자 현실정치에도 적극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짐 월리스(Jim Wallis) 목사가 하나님의 정치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성경 말씀을 오려내보니 성경은 들기도 힘들만큼 너덜너덜해져 걸레나 다름없게 되었다고 함. 실제로 성경은 끊임없이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이 사회의 약자에 대한 국가, 사회차원에 배려를 언급하고 있으며(신명기 10),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삶을 사셨음(마태복음 25장 비유).

 

 

2. 수구 기득권에 대한 나름의 반격들

 

1) 운동 정치의 한계

 

- 그렇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님. 그간 수구 기득권에 포획된 87년체제의 극복을 위해 많은 노력들이 있어왔음. 가장 강력한 반응은 시민사회로부터 분출됐음. 특히 2000년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을 시작으로 2000년대는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창궐한 시기였음. 근래엔 한미 FTA, 특히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이른바 촛불정국이라는 대규모 시위도 있었음. 보다 최근엔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한 희망버스와 제주 해군기지 강정마을 사태도 있음.

 

- 이런 운동들은 당시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폭발력을 불러 일으켰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사실은 수입기한 연장이었지만)나 한진중공업 노사협상 타결 등과 같은 성과를 내기도 했음.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이런 접근은 일회성 이벤트로 그쳐버리거나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로까지 이르지 못하고 그 동력이 상실되어 버린다는 것임. 2000년 총선시민연대로부터 등장한 16대 국회가 과연 그 이전과 얼마나 달랐는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음. 그 격렬했던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조금 늦췄을지는 모르나 결국에 그와 비교할 수 없는 큰 규모의 한미 FTA 타결을 막지 못하였고 이제 발효를 눈 앞두고 있음. 한진중공업 문제 역시 하나의 회사의 문제는 해결했지만, 그 외에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여전히 방치되어 있음.

 

- 문제가 생길때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현장에 갈 수는 없는 노릇.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누구든 운동적 삶을 지속한다면 개인의 삶은 위협받을 수밖에 없음. 운동의 동원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회는 전체주의적 경향을 발전시킬수 있는 것임. 그간 정치권 밖에서 권력을 비판하는 것에 집중했던 저항의 정치’, 혹은 운동 정치라는 것이 그것 자체로 그칠 경우 분명한 한계에 봉착하게 됨.

 

따라서 권력비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득권 집단이 아닌 일반시민,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대변하는 이들이 민주적 방식으로 집권하는 통치의 정치가 필요한 것임. 막스 베버가 말한 바와 같이, 정치 영역에서 선한 의도만으로 그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없으며,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순진한 의도는 본래의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야기하곤 함. 옳은 목소리를 내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기보다 그 옳은 뜻을 의미 있는 결과로 연결하기 위해선 보다 치열하게 갈등과 타협의 권력 현장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

 

이처럼 시민사회가 다양한 요구를 제약 없이 표출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어떤 공익적 균형 상태에 도달하지는 못함. 역사를 훑어보면 정당의 매개 없는 이익 표출은 강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왜곡 현상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음. 그러니 운동으로 이를 제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못함. 따라서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기독교 정치 운동을 위해서는 운동의 에너지를 정당의 제도화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임.

 

2) 새로운 정치 집단의 한계

 

- 정치권에서도 활발한 대응이 있어 왔음.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2004년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확보하며 국회에 진출한 것임. 그 이후 한국 정치지형에서 복지국가 논쟁을 앞장서서 촉발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나름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으나 여러 이유로 영향력이 확장되는 데는 일정한 한계를 보이고 있음.

 

- 그 이전인 1996 당시 지역주의와 부정부패를 비판하며 개혁적 전국정당을 표방한 통합민주당의 경우도 주목할만함. 당시 개혁적 인물들로 구성된 이 정당은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받으면서 등장하였고, (급조된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무려 11.2%의 득표율을 기록함. 하지만 의석은 겨우 9(3.6%)에 불과하여 개혁적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져버림.

 

- 최근엔 여권 내부에서도 수구 기득권에 반발하는 기류가 생겨나고 있음. 옛 한나라당의 개혁을 놓고 기득권 그룹과 개혁 그룹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당내 개혁을 외쳐오던 소장파 그룹의 리더 격인 김성식, 정태근 의원이 탈당을 결행하였음. 하지만 그 여파가 당의 개혁은 물론 개인적인 성공으로도 이어지지 못하는 듯 함.

 

- 이처럼 기존의 체제로부터 발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정치권 내부에서도 끊임없는 개혁의 노력이 있어왔으나, 그 결과는 실패에 그치고 말았음.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 것일까?

 

 



3.
민주주의의 유형: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

 

- 최근 ‘87년체제의 극복 내지는 ‘2013년체제의 준비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음. 이는 비로소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현실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음. 여기서 체제란 시스템, 즉 제도를 말하는 것임. 문제해결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 아니라 제도에 있다는 것임. 따라서 과거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결국 새로운 체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필요.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우리가 그간 어떤 체제에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일단 민주주의의 유형을 분해해봐야 할 것임.

 

-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그 제도 디자인에 따라 크게 영국식의 다수제 민주주의(majoritarian democracy)와 유럽(대륙)식의 합의제 민주주의(consensus democracy)로 나뉨.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두 유형을 구분하는 대표적인 특징은 크게 다섯 가지의 정치, 사회제도에 의해서 구분됨.

 

<1> 민주주의 유형 기준

구 분

다수제 민주주의

합의제 민주주의

선거제도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비례대표제

정당체제

양당제

(온건)다당제

권력구조

정부구성

단독정부

연립정부

/입관계

정부우위

의회우위(균형)

이익집단정치

다원주의

사회적 합의주의

 

- 유형의 구분은 선거제도에서부터 시작됨. 우선 다수제 민주주의부터 살펴보면,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는 지역구에서 1위에 오른 후보만 당선되고, 2위 이하의 후보들에게 던진 표는 모두 사표(死票)로 처리됨. A,B,C,D 네 정당이 전국적으로 33%, 32%, 20%, 15%의 득표율을 각각 획득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전국의 A정당 후보자들 중 50% 이상이 (33%를 겨우 넘는 수준의 지지율로) 1위를 하게 되면, A 정당은 33% 지지율로 과반의석을 차지하게 되어 정국을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됨. 비슷한 지지율을 얻은 B당을 비롯해 나머지 정당들은 소정당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임. A당을 지지하지 않았던 67%의 시민들의 의견이 역설적이게도 소수의 의견이 되어버리는 것. 반면,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각 정당들이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확보하게 됨. 사표가 발생하지 않고 유권자가 던진 투표가 거의 비례하여 의석으로 반영됨

 

- 두 번째 특징은 정당체제. 이것은 선거제도와 밀접하게 연관됨.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하에서는 지역구에서 1등을 많이 배출할 수 있는 거대 정당들만 살아남게 되어 결국 양당제의 형태를 취하게 됨. 반면 비례대표제는 등수나 승패에 상관없이 자식이 획득한 지지율만큼 의석수를 확보하므로 여러 정당들이 의미있는 세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음. 보통 4~5개 정도의 온건다당제 형태를 띰.

 

- 세 번째 특징인 행정부의 구성차이도 앞의 두 제도와 연관되어 있음. 영국과 같이 다수제 민주주의 하에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할 경우, 다수당이 행정부를 구성. 다수당이 의회와 정부를 모두 장악하는 것임. 반면 합의제 민주주의에선 한 정당이 과반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두 개 이상의 정당들이 모여 연립정부를 구성.

 

- 네 번째 특징인 행정부와 입법부 간 힘의 분배 양상을 보자. 다수제 민주주의에선 행정부가 압도적 우위에 있음. 영국의 경우와 같이, 의회 다수당의 대표가 행정부의 수장, 즉 총리가 되기 때문에 총리는 행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까지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둘 수 있음. 한국과 같은 제왕적 권한을 갖는 대통령제에선 행정부가 더욱 막강한 우위를 갖게 됨. 반면, 합의제 민주주의 하에서는 연립정부를 통해서만 행정부가 유지됨. 즉 행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선 다른 정당들의 선호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임. 따라서 행정부와 입법부 간 힘의 균형상태를 유지해야 함.

 

- 마지막으로 이익집단들의 경우, 다수제 민주주의에서는 이익집단들이 다원주의적으로 행동함. 각자가 독립하여 정치의 간섭이 최소화된 상태에서 서로 분쟁하며 적대적인 관계를 가짐. 한편 합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주요 이익집단들이 서로 합의를 중시함. 정부의 중재하에 노동자와 사용자들 간 사회협약을 맺는 노사정 삼자 간의 사회적 합의주의경향을 보이는 것임.

 

- 이처럼 같은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어떤 의도를 갖고 어떤 정치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배제의 정치(politics of exclusion)가 될 수도 있고 포괄의 정치(politics of inclusion)가 될 수도 있음.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관찰되는 바와 같이 배제의 정치는 가급적 승자에게 많은 권한을 몰아주는 제도. 적어도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승자가 원하는 바가 정책결정과정에 반영되는 효율성을 높인 체제임. 따라서 약자나 소수자 혹은 반대세력에 대한 배려가 상대적으로 경시되는 경향이 있음. 반면, 합의제 민주주에서 나타나는 포괄의 정치에서는 구조적으로 승자독식이 어렵기 때문에 상호 간 협력과 타협이 일상화. 여기서는 가급적 많은 계층의 의사를 정책결정과정에 반영하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나 반대그룹에 대한 배려와 포용이 중요하게 다뤄짐.

 

- 그렇다면 결국 민주주의의 가치가 더욱 잘 반영되는 것은 배제의 정치라기보다는 포괄의 정치라고 할 수 있음. 포괄의 정치는 다수결의 원칙에 있어서도 가급적 많은 다수를 확보하려고하고, 대의제에 있어서도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와 타협을 중시하기 때문. 따라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정치개혁이란 포괄의 정치가 보다 잘 작동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임

 

- 실제로 선진국들의 대부분은 합의제 민주주의를 취하고 있음. 예컨대, OECD 30개 국가들 중 다수제 민주주의의 전형인 다수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대여섯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비례성이 상당히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음. 특히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의 대부분은 비례대표제 성격이 강한 혼합형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음.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떤 유형에 가까운가? 그리고 그 체제로부터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점은 무엇일까?

 

 



4.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 배제의 정치

 

- 한국은 포괄의 정치보다는 배제의 정치가 강하게 나타남. 특히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맞물리면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심하게 관찰됨. 주요 정당들이 지역선호에 의존하더라도 충분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이나 이념 대결이 아닌,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데 집중하는 것임. 이런 구조하에서는 신생 정책 정당들이 의미 있는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

 

- 더욱 큰 문제는 승자독식을 유발하는 현재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가 이러한 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킴으로서 배제의 정치가 심화되는 악순환을 만든다는 것. 지역구에서 상대적 다수를 확보한 1등만 당선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되는 것을 꺼리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비록 자신의 선호와 가장 유사하더라도 1위로 뽑힐 가능성이 낮은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음. 결국 지역 지지기반이 취약한 신생 정책 정당들은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낮아지게 되는 것.

 

-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정책결정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찾아볼 수 없음. 이들이 소수인가? 그렇지 않음. 무려 전체임금 노동자의 무려 2/3에 달함.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들을 대변하는 정책은 좀처럼 나오지 않고 있음. 오히려 소수의 기득권 집단을 대변하는 정책들이 더 양산되고 있는 것임.

 

- 왜 주요 정당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가? 그럴뿐만 아니라 재벌에게 유리한 정책과 공약들을 더 우선시하는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장 핵심이 되는 이유는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선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아도 당선이 가능하고, 집권도 가능하기 때문임.

 

- 전라도의 민주통합당과 경상도의 새누리당을 떠올려 보라. 해당 지역구에서 오직 일등만이 선출되는 현재의 선거제도 하에서 이들은 굳이 정책대결을 하려고 하거나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려는 필요를 크게 느끼지 못함. 얼핏보면 굉장히 격렬한 싸움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나타나는 정책의 모습은 비슷함.

 

- 최근에는 지역주의가 점진적으로 완화되고 있으나,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인해 선거에서 그 결과가 반영되지 않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 예를 들어, 지난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부산 지역에서 총 18개의 의석 중 17개를 차지하여 94% 의석점유율을 확보했음. 결과만 보면 지역주의가 전혀 완화되지 않은 듯함. 하지만 실제로 한나라당이 얻은 득표율은 겨우 52%에 불과했음. 거의 절반의 시민들이 다른 당을 지지한 것임. 하지만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인해 결과가 왜곡되어 마치 지역주의가 고착화되고 있는 듯한 효과를 내고 있는 것임. 요컨대, 한국에서 배제의 정치가 확장하는 핵심뿌리는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라 할 수 있음.

 

 

5. 비례대표제 확대의 중요성

 

- 결국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체제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포괄의 정치가 작동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수적임. 그동안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되어 왔던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 빈곤층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제도가 필요한 것임.

 

- 현재 한국의 정치인들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더라도 당선이 가능한 선거제도 하에 있기 때문에 굳이 이들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거나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음. 그보다 자신의 지역에 확고한 지지기반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임. 하지만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더 이상 이들의 목소리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음. 이들이 정당에 던진 표가 그대로 의석으로 전환되기 때문. 따라서 각 정당은 사회의 상당수인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한 정책대결을 펼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비례대표제가 정책정당의 등장을 촉진시키고 인물대결이 아닌, 정책대결을 이끌어낸다는 것은 이런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임.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정책대결이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하다는 것. 그야말로 하나의 체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임. 비례대표제는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의 목소리가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되기 때문에 다수의 정당들이 등장하게 됨. 이는 보통 보수, 중도보수, 중도진보, 진보 등의 그룹으로 나뉘게 되고, 이들이 사회분포에 따라 적절하게 의석을 나눠가짐. 이 때 어느 한 당도 절대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개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됨.

 

- 이렇게 되면 중도보수나 중도진보를 중심으로 이들이 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언제나 잠재적인 연정의 파트너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이 어느 한 집단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특히 소수의 기득권에게만 유리한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음. 오히려 사회의 다수인 서민들과 중산층의 목소리가 안정적으로 정책결정과정에 반영될 수 있음

 

- 이것은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지국가 논쟁에도 큰 함의를 제공해주고 있음.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장기적 계획을 바탕으로 적어도 2~30년간 꾸준히 진행돼야 하는 것. 하지만 한국과 같은 정치구조가 유지된다면, 5년 단위로 대선을 치를때마다 국민전체가 도박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됨.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현재의 권력구조 하에서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임. 안정적인 복지국가를 달성하고 있는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비례대표제와 의원내각제(혹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 이런 제도 하에서라야 중도진보와 중도보수 간 예측가능한 견제와 협력 속에 향후 몇 십 년 후를 보고 지속적인 정책일관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

 


 

6. 2012년 선거를 앞두고 주목해봐야 할 지점들

 

이번 총선과정을 거치면서 향후 대선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부분들이 있음. 이것은 어쩌면 나비효과처럼 지금은 관심 받지 못하는 작은 날개짓에 불과해보이나 향후 한국 정치에서 큰 태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이를 통해 비로소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는 이른바 ‘2013년 체제를 여는 첫 걸음이 될 수도 있는 것임.

 

1) 야권 연대와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우여곡절 끝에 타결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임. 사실 두 정당이 연대해야 할 이념적 당위성이 있는 것은 아니나, 결국 현재 소선거구 일위대표제 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연대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 사실 이 문제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 왔음. 예컨대,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와 노회찬 후보의 단일화 문제, 그리고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유시민 후보와 심상정 후보의 단일화 과정이 얼마나 많은 논쟁거리가 되었던가. 양당체제를 강요하는 이러한 현실 정치구조는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집단의 목소리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음.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때 수용되지 못한 목소리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이란 것임.

 

하지만 이번 연대의 합의문에는 그 동안 중요시되지 않았고 언론도 크게 주목하고 있지 않은, 하지만 새로운 체제를 여는 데 핵심이 되는 조항이 마지막 부분에 들어 있음. 향후 추진 방안을 약속한 3조의 세 번째 항임.

 

3-3.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반영하는 정치제도 및 선거제도 개혁

우리는 19대 국회에서 국민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치제도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 등을 포함한 선거제도의 혁신을 추진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큰 의미를 갖는 선거제도의 개혁, 그것도 가장 개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이번 야권 연대의 핵심 조건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음. 특히나 올 해는 총선 이후 대선이 함께 치러지게 됨. 이런 선거제도 개혁 의제가 대선에서의 야권 연대과정에선 더욱 구체화되어야 할 것. 가장 확실한 방안은 자신의 기득권을 내어놓지 않으려는 국회의원들에게 개혁의 역할을 맡기기보다, 다른 국가들의 성공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민들이 직접 선거제도의 개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대선 후보 단일화의 조건으로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을 2013년에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임. 올해 우리의 운동이 집중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됨.

 

2) 여권의 분화와 개혁적 중도보수 세력의 등장 가능성

 

이런 흐름이 만들어진다고 할 때,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여권의 분화 가능성임. 박근혜 위원장 중심으로 당이 재편되면서 그 동안 표면 밑에 겨우 숨겨져있던 당내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음. 특히 총선을 지나 대선의 결과에 따라 이런 갈등이 더욱 증폭될 수도 있음. 이 때 중요한 것은 과연 보수 진영 내에 친이, 친박에 얽매이지 않는 합리적 중도보수 그룹의 독자적 세력화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

 

그 동안 보수 진영에서 합리적 중도보수가 세력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음. 공천권이 친이계와 친박계의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이탈하더라도 현재의 선거제도와 지역구도 하에서 의미 있는 정당으로 생존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임. 하지만 만약 야권의 선거제도 개혁이 성공해 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면, 그 가장 큰 혜택은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빈 공백으로 남아 있는 중도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에게 돌아갈 것. 예컨대, 전국적으로 10%의 지지율만 얻더라도 30석의 의석을 확보해 원내에서 의미있는 개혁세력으로 존재할 수 있으리라는 것임. 위에서 언급했던 1996년의 통합민주당과 2004년의 민주노동당을 기억해보라. 그들이 독일식 비례대표제 하에서 선거를 치렀다면 그들은 적어도 3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여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강력한 정책정당이 되었을 것. 개혁적 중도보수 그룹이 이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음.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개혁흐름을 주도해야 함. 따라서 총선 이후 새누리당 안팎에서 개혁적 중도보수를 꿈꾸는 정치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선거제도의 개혁과 함께 독자적 세력화를 준비해야 할 것.

 

언급한 바와 같이 합리적 중도보수 정당의 등장은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그룹. 그렇다면 진보와 중도진보 진영에서도 애써 진보와 보수의 대결을 부추기기보다는 오히려 중도보수의 등장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포용함으로써 큰 틀의 개혁 연합 세력으로 연대할 필요가 있음.

 

 

7. 나가는 글

 

- 흔히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함. 인간들이 서로 부딪기며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결정론보다는 어떻게 하면 문제해결이 가능할지를 고민하고 그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임. 순진한 낙관론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비관적 결정론으로부터도 거리를 두면서, 2012년 요동치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그 속에서 합의제 민주주의적 요소를 도입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 가장 어둡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세상 속의빛과 소금이기를 자처하는 기독청년들이 그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데 그 누가 딴지를 걸겠는가.

 

 

[별첨] 대안으로 제시되는 선거제도에 대한 간략한 설명

 

1) 대안 1: 중대선거구제

 

- 정세균 의원 등을 중심으로 옛 민주당에서 강력히 주장해왔고, 언제라도 다시 야권에서 나올 수 있는 제안임.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한 명이 아니라 2~8명까지 선출하는 방식임. 예컨대, 5인선거구제면 한 선거구에서 5명을 뽑는 방식임.

 

- 이 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지역주의는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을 것임. 비례성도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보다는 다소 높아질 것임. 예컨대, 전라도 지역에서도 한 지역구에서 5명이 뽑힌다면, 그 중에 한 명은 새누리당이 뽑힐 확률이 높기 때문임.

 

- 하지만 이런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중대선거구제는 개혁이라기보다는 개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 우선 비례성 왜곡의 문제임. 소수에 대한 과대대표가 너무 심각해지기 때문임. 예를 들어, 5명을 뽑는 한 지역구에서 각 후보자들의 득표율이 28%, 27%, 25%, 8%, 3%, 2.8%라고 한다면, 1등부터 5등까지 모두 한 석을 갖게 됨. 28%를 얻어도, 3%를 얻어도 동일하게 한 석을 확보하는 것임. 만약 이것이 전국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면, 각 정당의 국민 대표성과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함.

 

- 둘째는 더 큰 문제로, 중대선거구제는 또 다시 정당간 정책대결이 아닌 인물 중심의 선거를 부추김. 여기서는 한 정당이 한 지역구에 복수의 후보자를 공천할 수 있음. 소속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기조의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각 후보자들은 정책대결이 아닌 인물을 부각하는 방법 밖에 없음. 그렇게 되면 결국 후보자들은 개인후원회와 같은 사조직을 많이 거느리려고 할 것이고, 여기서 안정적인 지지자들을 확보하려고 노력할 것임. 이른바 돈 많이 드는 선거, 금권선거의 모습을 갖게 되리라는 것임. 일찍이 이 제도를 갖고 있던 일본도 이러한 금권선거 문제가 커지면서 결국 90년대 중반에 선거제도를 개혁한 바 있음.

 

2) 대안 2: 독일식 비례대표제

 

- 많은 학자들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하고, 현재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서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원리는 간단함. 우선 12표제를 바탕으로 한 표는 정당에게, 한 표는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던짐. 이 때 A 정당의 전체 의석수는 정당의 득표율에 의해 결정되고, 그 중 50%는 지역구 의원 몫으로 지정해 놓는 방식임. 예를 들어, 100석의 의회를 가정해보자. 이 때 50석은 비례대표의석이고, 50석은 지역대표 선출을 위한 소선거구임. 개표가 시작되고, A 정당의 득표율이 40%라고 하면, 그 정당이 갖게 되는 전체 의석은 40석임. 그 다음엔 소선거구의 선거 결과를 계산함. 만약 전국 50개 선거구 중에 A정당 후보들이 20곳에서 1위를 하게되면 그 20명은 지역대표 의석을 차지하게 됨. A당이 확보한 40석 중에 20석을 이렇게 지역대표로 선출하게 되면, 그 나머지인 20석은 정당명부에서 순서대로 뽑히게 되는 것임.

 

- 이렇게 되면, 우선 전체 의석이 비례대표제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비례성이 높게 보장됨. 동시에 소선거구제의 특징이 50% 보장되어 지역대표성도 확보하게 됨. 그래서 거의 모든 정치학자들이 현존하는 최고의 선거제도라고 하는 것.